지난달 27일 할리우드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퍼레이드에 파바가 주축이 된 사물놀이패와 고전무용을 비롯한 취타대가 등장했다. 한인에게는 낯설지 않은 장면이지만 크리스마스 퍼레이드에 참가한 시민들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행렬이었다. 신현식 기자 |
최근에는 재난 긴급구조대 교육, 주한미군 위문편지보내기, 노인 신분증 무료제작 등 피부에 와닿는 봉사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또 한미 FTA 등 한인사회와 한국의 이익을 위한 서명 운동, 또 사물놀이패 공연 등 우리 문화 알리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렇다 보니 주류 정치인들이 한인사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체가 됐다고 자부한다.
그 중심에는 강태흥(68) 회장이 있다. 면도를 해도 금세 자라서 얼굴을 뒤덮는 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 강 회장은 외모와 어울리게 ‘타이거 강(미국명)’이라고 불린다. 봉사단체장으로서가 아닌 그의 ‘라이프’가 궁금했다.
-원래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80년대 초반 '타이거 5'라는 광고대행사를 차렸습니다. 마침 팩벨(현재 AT&T)이 소수계에 광고를 안 준다는 소송에서 패소했죠. 그래서 소수계 광고대행사 선발 행사를 했는데 거기에 나가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광고권을 땄습니다. 당시에는 큰 화제였습니다. LA타임스에서 타이거 강이 누구냐는 세 페이지짜리 특집기사를 내보낼 정도였죠."
-돈을 많이 버셨겠네요. 신문 제작도 하셨다면서요.
"당시 한국 군사정권은 LA타임스가 한국 내에 배포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광고대행사로 인연을 맺은 LA타임스에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기다려 보라고 하고 한국에 갔습니다. LA총영사관에 일했던 영사가 마침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었는데 그 사람한테 '앞으로 올림픽도 치러야 하는데 유력신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귀띔을 했고 일이 잘 풀렸습니다. 이후 LA타임스 발행인을 만났는데 한글판을 해보자는 거에요. 기자 10명에 번역자 10명을 붙여주고 영어기사를 한글로 번역하고 이를 다시 영어로 번역해서 90%가 일치하면 기사로 썼습니다. 86년부터 88년까지 한 달에 48페이지씩 영한대역 기사를 냈지요."
-그러다 얼마 안 가 관두신 걸로 압니다.
"광고대행사와 언론을 동시에 한다는 게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대행사를 하면 25%가 남는데 그 당시에 현대가 포니를 미국에 상륙시킬 때고 다른 한국 기업들이 이미지 광고를 많이 할 때에요. 돈이 보이니까 옆에서 말들이 많았어요. 어느날 타임스 발행인이 양자택일하라고 해서 영한대역 특별 판을 포기했죠."
-그만큼 대행사일이 짭짤했군요. 그런데 나중에 파산을 했다면서요.
"소련가고 또 북한을 가면서 속된 말로 거덜이 났죠. 당시 나는 한국 TV방송을 틀어주는 TV채널을 갖고 있었는데 그쪽에서 의뢰(소련.북한 방문)가 들어왔던 겁니다. 80년 모스크바 84년 LA 두 대회가 반쪽으로 치러지면서 과연 소련이 88년 서울올림픽에는 참가할지 여부를 알아보러 간 거였습니다. 북한은 89년 평양축전과 임수경 밀입국 문제로 두 번을 갔습니다."
-의뢰한 방송사로부터 제값을 받았으면 손해 볼 일 없었을텐데요.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경비 계산도 어렵고 특히 북한 방문 때는 정보당국이 개입도 했고…. 북한가서 찍은 것은 임수경 사태가 커지면서 아예 폐기처분됐습니다."
-결국 얼마를 날리고 파산을 한 겁니까.
"300만 달러죠. 회사에서 못 번 것까지 굳이 따지면 400만 달러 정도로 봐요. 직원 월급을 못 주게 되니 최신식 카메라나 장비를 갖고 가라고 하고는 회사를 나서는데 주머니에 단 7달러밖에 없는 거에요. 정신을 못차리겠더라고요. '타이거'가 호랑이에게 물려간 셈이죠. 9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그 후엔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습니까.
“아내가 받아온 푸드스탬프 덕도 봤습니다. 원래 아내가 할리우드에서 피자집을 했는데 파산하면서 함께 문닫았습니다. 그런데 94년 노스리지 지진이 나고 피자집이 들어있던 건물이 무너졌고, 이후 보상금을 받은 건물주가 새로 건물을 올리면서 다시 가게를 하라고 해서 피자집을 재오픈했습니다. 구사일생이죠. 이후 피자 팔아서 먹고 살았습니다. 제게 피자는 눈물젖은 빵이에요.”
강 회장에게는 두 가지 직업이 있다. 파바 회장과 라디오 칼럼을 진행하는 칼럼니스트. 풀타임을 기준으로 한다면 파바 회장이 맞고, 직업이 한푼이라도 돈을 버는 것이라면 언론인이 맞다.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1996년부터죠.코너 이름은 ‘라디오 펀치’(라디오코리아 방송) 입니다.”
-월급은 얼마나 받나요.
“구체적인 액수는 그렇고…. 아주 적습니다. 내 원칙은 무료로 칼럼을 쓸 수 없다는 것이죠. 난 프로이기 때문입니다.”
-칼럼이 꾸짖는 게 많아서 화제가 되곤 하죠. 에피소드는 없나요.
“라이오 펀치는 펀치를 날려야 이름 값하죠. 한인회, 평통, 관공서 등 펀치를 날릴 때가 많아서 소재 걱정이 덜했습니다. 소위 깠다고 하죠. 솔직히 몇 번 예외적으로 못 깠 적은 있습니다. 제 개인의 문제는 아니었고, 라디오방송사가 ‘협조’를 부탁한 적은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까는 데’ 활용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사감에 따른 그런 일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방송 소재로 잡는 단체는 당연히 문제점이 노출된 곳(사람)이었고, 그래야 소재가 되는 것 아닙니까? 다만 수위 조절은 했습니다. 한인사회 전체가 공분하는 짓을 한 단체나 사람은 진짜 펀치를 날렸고, 그 이외에는 대부분 지적 차원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마구 펀치를 날리고 강도를 높이면 ‘판 자체’가 깨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뒀습니다.”
-펀치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죠.
“(웃음) 누구는 사립탐정을 고용해서 내 뒤를 쫓는다는 얘기도 있었죠. 전 제 길 갑니다.”
광고대행사·TV채널 파산 후
한때 푸드스탬프로 생계 유지
심장수술 후 코마에 빠지기도
덤으로 사는 삶·욕심 없어져
-다른 이야기입니다. 강 회장이 에릭 가세티 LA시의장 등 주류사회 정치인들과 친하다며 파바를 지렛대로 로비스트를 하면서 수수료를 챙긴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세티 의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닙니다. 꿈이 큰 사람인데 사소한 일에 끼어들려고 하겠어요. (얼굴이 격해지며) 만약에 제게 로비를 부탁해서 돈을 준 사람이 있다면 당장 와보라고 하세요. 제가 하고 싶어도 능력이 안됩니다. 제 친분이 로비를 할 정도가 아니에요. 다만 우리 파바 학생들이 상 받을 수 있도록 부탁한 적은 있어요. 이건 로비가 아니죠.”
-에릭 가세티 시의장이 시장이 되면 몇 개의 커미셔너를 한인사회에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공식적으로 커뮤니티 사람들이 있는데서 각 후보들이 공약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가세티 의장도 공약 대결에 참여해야 하고 그런 요구를 우리 커뮤니티가 해야 합니다.”
-파바가 그랜트를 몇백 만 달러씩 받는다는 하던데요.
“그 말속에는 또 불법로비 같은 냄새가 있습니다. 이제 많이 들어서 화도 안 나요. 되물어보죠. 미국 정부가 바보입니까.”
-정부로부터 그랜트 받으면 파바 운영에 좋은 것 아닙니까. 운영비용도 늘어나고.
“2003년인가 그렇지 않아도 그랜트를 받으려고 카운티 관련부서에 갔어요. 관계자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랜트를 쫓으면 망한다고 하더라고요. 단체가 사업목적이 뚜렷하면 끝까지 살아남고, 그렇게 오래 유지하면 자연히 그랜트도 들어온다고 충고하더군요. 희망은 있어요. 파바가 히스토리(활용내역)가 좋아졌잖아요.”
-파바 회장을 하면서 월급은 얼마를 받나요.
“월 활동비로 2000달러를 예산에서 책정받았습니다. 파바가 여러가지 일을 벌이다 보니 오히려 제 돈에서 나가는 게 많을 때도 있어요. 파바에서 쓴 체크는 일목요연하게 쓴 용처가 정리돼서 사무실에 있어요. 필요하면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고.”
-예산이 부족한 비영리 단체 회장 한다는 게 참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파산 후 시작한 파바가 제 삶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파바가 삶 자체에요. 돈을 버는 직장이 절대 아닙니다. 가정 생활하면서 돈 받나요? 난 그저 ‘청소부’입니다. (파바 청소활동을 빗대 표현)”
-얘기 나온 김에, 청소 나설 때 준비기간이 오래 걸린다죠.
“단체로 움직이니까. 허가받을 곳이 많아요. 시정부, 카운티정부, 주정부, 연방정부, 마지막으로 육군 공병대에서 허가를 받죠. 7개월 걸립니다. 1000만 달러짜리 책임보험도 들어놔야 됩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죠.”
-작년에 심장 수술하셨죠. 괜찮으세요?
“심장 동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혈액 공급이 안됐습니다. 평생 정말 건강했는데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수술대에 누웠어요. 그런데 수술후 48시간 코마 상태에 빠졌죠. 간신히 깨어났고 폐에 물이 차서 따로 1주일간 입원도 하고…, 죽었다 살아난 셈이죠.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 살 반 된 사람으로 삽니다.(웃음)”
-생각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요.
“욕심이 없어졌다고 봐요.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버릴 건 버리고. 이제 덤으로 사는 것인데 다르게 살아야죠.”
-파바 행사와 관련된 각종 보도에서 얼굴이 잘 안보이십니다.
“찍히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내 얼굴이 자주 나가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뭐라고 할 것 같아서 가능한 한 ‘투명인간’이 되려고 합니다.”
-큰 일이 남아있죠?
“2013년 1월1일 로즈 퍼레이드에 파바가 나갑니다. 전세계 몇억 명이 시청하는 행사인데 저희가 자랑스럽게 나가죠. 지난달 27일 할리우드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퍼레이드가 전초전이었다고 보는데 주류사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남은 1년 확실히 준비해서 로즈 퍼레이드에서도 한국의 고유 전통 문화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장병희 기자
강태흥 회장은
지난 1973년 처음으로 미국에 왔다.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 신방과대학원을 나왔다. 심장 수술을 받았다. 때문에 본인은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골프는 시간이 아까워서 안치지만 1주일에 2권씩 책을 읽는 독서광이기도 하다. 올림픽 라이온스 클럽 25대 회장을 역임했다.
파바는
재미한인자원봉사자회(Pacific American Volunteer Association)는 2002년 강태흥 회장과 일부 뜻있는 한인들에 의해서 시작됐다. 연중 행사로 바다청소, LA강청소, 타운 청소, 그리피스 파크 조류서식지 관리 등의 행사를 하고 주니어 학생들에게 자원 봉사의 기회를 제공하고 봉사의 참 의미를 깨닫는 것에 힘을 쏟고 있다. 남가주 지역 본부 이외에도 한국에도 파바코리아가 결성돼 지구 지킴이, 환경 지킴이로서의 활동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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